• 최종편집 2024-06-14(금)
 
K200A111.png▲ 대우중공업을 인수했던 ‘두산 DST’를 2016년 다시 인수한 ‘한화디펜스’가 생산하는 K200A1. (사진=한화디펜스 제공)
 
1967년 이후 미국의 군사원조로 M113 장갑차 인수 받아 기계화 부대 등에서 운용
 
1970년대 중반 이탈리아 피아트사가 개발한 차륜형 장갑차 국내에서 면허 생산도

K200, 1981년부터 ADD가 설계하고 140개 업체 참여해 대우중공업이 개발한 역작

말레이시아에 110대 수출도...개량형인 K200A1은 현재도 ‘한화디펜스’에서 생산 중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총괄 에디터)

장갑차는 지상 전투와 전투 지원을 위해 현재까지 가장 광범위하게 보급된 무기체계로서 주로 병력 수송에 사용되나, 보병전투에 투입되어 적을 제압하거나 수색 정찰 및 기지 방어 등 다양한 전투 임무를 수행한다.

장갑차는 1960년대 이후 수행 임무에 따라 병력수송 장갑차(APC: Armored Personnel Carrier)와 보병전투 장갑차(IFV: Infantry Fighting Vehicle)로 구분되고, 주행 장치의 형태에 따라 궤도형과 차륜형으로 나뉜다.

궤도형 장갑차는 동력장치에서 발생된 동력이 궤도를 구동하여 주행하게 되며, 차륜형 장갑차는 차량형 바퀴를 구동시켜 주행한다. 궤도형과 차륜형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적합한지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이다.

다만 미 육군은 야지(Off-road) 이용비율이 60% 이상일 때, 전술 및 고속기동 임무 차원에서 지형과 기후에 관계없이 운용 가능한 무기체계로 “궤도형이 우수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선진국에서는 운용 목적에 따라 궤도형과 차륜형을 함께 운용하는 추세다. 궤도형은 산악 및 야지에서 주로 병력 수송 및 전투용으로 운용되며, 차륜형은 포장도로와 평지에서 기동성이 뛰어나 수색 정찰 및 기지방어용으로 운용된다.

한국군이 최초로 보유한 장갑차는 1948년 12월 10일 창설된 육군 기갑연대 장갑대대가 운용했던 M8 그레이하운드와 M2 및 M3 계열의 반궤도 장갑차였다. 반궤도 장갑차는 앞부분은 차량형 바퀴이고, 뒷부분은 궤도가 장착된 복합 바퀴 형태이다.

별다른 장비가 없던 건군 초기에 M8 장갑차는 정부수립기념 시가행진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는 등 화제의 대상이었고, 이승만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수시로 경무대나 행사장에 출동했다. M8 장갑차는 정찰과 통신지원용으로 각 사단에서 운용했으나 6·25전쟁 중 모두 파괴되었다. M2 및 M3 계열 장갑차도 미군으로부터 5∼7대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군은 1967년 미국이 군사원조로 지원한 M113 장갑차 86대를 인수함으로써 제대로 성능을 구비한 장갑차를 갖게 된다. M113은 미국에서 개발되어 자유진영 국가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된 대표적인 병력수송 장갑차(APC)이다. 이 장갑차는 알루미늄 장갑의 두께가 12∼38mm 정도로 소총 및 기관총탄과 포탄 파편을 방어하는 수준이었다.

한국군은 1971년 미국의 특별 군사원조로 M113 장갑차 273대를 추가로 인수하여 기계화보병사단에 배치했다. 이와는 별도로 베트남에 파병된 맹호부대가 미군으로부터 44대를 인수 받아 전장에서 운용하기도 했다. M113은 전차의 보호를 받으며 병력을 수송하는 개념으로 개발됐지만, 정글지역인 베트남 전장에서는 전차 없이 단독으로 작전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장갑차는 기본형을 토대로 용도에 맞게 개조하여 다양하게 운용한다. M113도 같은 차체를 활용하여 개발한 박격포 탑재 장갑차, 탄약운반 장갑차 등이 존재한다. M106A1, M125A1 장갑차는 M113A1 장갑차에 각각 4.2인치 및 81mm 박격포를 탑재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다. 이 장갑차들도 1971년 특별 군사원조로 도입되었는데, 조종수 1명과 박격포 운용요원 5명이 탑승한다.

M548 탄약운반 장갑차는 1960년 미국에서 다용도 물자운반용으로 제작됐다. 이 장갑차는 M113과 차체는 조금 다르지만 공통 부품을 많이 사용해 M113 계열로 분류된다. 도입 후 주로 8인치 자주포 포탄 운반용으로 사용했다.

M577 지휘용 장갑차는 내부에 각종 지휘·통신용 장비를 탑재한 것으로 차체가 M113 계열보다 60cm 정도 높고 장갑차 뒤쪽에 지휘소용 텐트를 설치하기 용이하다. M578 구난용 장갑차는 차량 후부에 크레인을 장착해 고장 차량의 견인에 사용할 수 있다. 

한국군은 1970년대 중반 수도권 및 후방지역 방어체제를 보완하면서 도시게릴라 작전에 대비하기 위해 이탈리아 피아트사가 개발한 CM6614 차륜형 장갑차를 국내에서 면허 생산했다. K900이란 이름으로 1977년부터 실전 배치된 이 장갑차는 승무원 2명을 포함해 총 11명이 탑승하며, 차체에 관측구와 총안구가 있어 보병이 승차한 상태에서 관측과 사격이 가능하다.

하지만 차륜형은 야지에서 기동성이 떨어지고 방어력이 약해 산악이 많은 전방지역에서는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아 장갑차의 주류에서 밀려났다. 다만 국방과학연구소가 K900을 면허 생산하면서 전술타이어 등 부품 국산화를 65% 이루었고 고강도 재질의 압정장갑판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성과는 있었다.

현재 한국군의 주력 장갑차로 활약하는 K200 장갑차는 국방연구개발사에서 ‘한 획을 그은 위업’이라고 불릴 정도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 이유는 산업기반이 미약하던 1980년대 당시 외국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기술로 독자 개발한 점, 보병·전차·포병과 협동작전이 가능한 점, 다목적으로 계열화시킨 점, 양호한 군수지원 체계를 구비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K200 장갑차는 1981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 주도로 설계되고, 체계종합 업체인 대우중공업(현 한화디펜스)을 중심으로 140여개 업체가 참여하여 개발한 역작이었다. 그 당시 국내에는 궤도차량 설계에 대한 기술 축적이 전무한 상태였다. 차체를 이루는 알루미늄 장갑판재의 용접을 위해 대우중공업 직원들은 2개월간 해외교육을 받은 후, 6개월 동안 훈련과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알루미늄 동체 구조물을 제작할 수 있었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제품이 개발되었고, 시험평가를 거쳐 1984년 무기체계로 채택된 K200 장갑차는 20사단에 최초로 납품되었다. 운용 간에 상당한 결함이 발견됐지만 기술진이 보완을 거듭하여 점차 신뢰를 쌓았다.

특히 1986년 겨울에 해발 1,157m의 눈 덮인 용문산을 거뜬히 올라갔고, 1988년 팀스피리트 훈련 시 미군이 장갑차 기동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고지를 넘어 기습에 성공함으로써 미군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일선부대에서 K200에 대한 불만이 없지는 않았다. K200에 장착된 영국제 변속기는 반자동이어서 엔진의 분당 회전수(rpm)가 적정 범위에 있을 때 손으로 기어 변속을 해야 한다. 따라서 조종수 교육이 미흡하면 기어 변속 간 클러치가 마모되는 등 문제가 발생한다.

1987년 국방과학연구소의 강윤수 박사는 당시 조남풍 수도기계화사단장과 서완수 20사단장을 비롯한 양개 사단의 장갑차 관련 장병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K200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진솔하게 얘기한 후 국산 장갑차의 성공을 위해 조종수 교육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한다. 조종수 교육에 노력을 기울이자 더 이상 클러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으며, 그 사이에 기술적 보완도 이루어졌다.

K200은 최초 사업 추진 시 사업명이 ‘두꺼비’였다. 두꺼비의 번식력처럼 이 사업을 기반으로 기술의 발전과 함께 장갑차의 계열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 뜻대로 K200을 기본으로 하는 계열 장갑차들이 속속 등장했다. 20mm 발칸포탑재 장갑차, 81mm 및 4.2인치 박격포탑재 장갑차, 구난용 장갑차, 화생방정찰 장갑차, 전투지휘용 장갑차 등이 그것이다. 

발칸포탑재 장갑차는 송탄 시스템을 독자 설계하고 현수잠금장치도 독자 개발했다. 박격포탑재 장갑차는 신소재를 적용하여 차체 무게를 16%나 경량화했고 사격 운용각도 증대시켰다. 구난용 장갑차는 크레인과 윈치를 탑재하여 기계화부대 작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했다.

K200 차체 개발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여 30mm 쌍열 자주대공포 ‘비호’와 한국형 단거리 지대공미사일 ‘천마’ 개발에도 적용됐고, 1990년대 말레이시아에 110대를 수출하기까지 했다. 또한 세계 최고 성능을 가진 ‘차기보병전투장갑차’인 K21 개발에 훌륭한 토양이 되었다.

K200은 1984년부터 2008년까지 계열 차량까지 포함하여 2,500여대가 생산되었다. 그런데 일선부대에 배치된 이후 기동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이에 동력 계통을 개량하여 고출력의 엔진과 새로운 변속기를 장착한 개량형 모델을 만든 것이 K200A1이다. 이 장갑차는 엔진이 350마력이어서 중량 대비 마력이 동급 장갑차 중 가장 우수하다.

1995년부터 배치되기 시작한 K200A1 장갑차는 대우중공업이 생산하다가 IMF 당시 해체되면서 방산부문은 대우종합기계로 분리되고 이를 인수한 두산중공업이 ‘두산인프라코어’란 사명으로 생산했다. 2009년 방산부문을 별도 법인화하면서 사명이 ‘두산 DST’로 바뀌었고, 2016년 이를 다시 인수한 ‘한화디펜스’가 현재 K200A1 장갑차를 생산하고 있다.

김한경200.png

시큐리티팩트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김한경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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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기 디테일] ⑬ 국방연구개발사에 한 획을 그은 위업, 대우중공업의 K200 장갑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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