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고속정,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KIST에서 설계해 해군이 건조한 'KIST 보트'
1976∼93년 간 코리아타코마 및 한진중공업이 참수리급 고속정(PKM) 총 108척 건조
2008∼금년 한진중공업과 STX조선해양이 윤영하급 미사일고속함(PKG) 총 18척 건조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총괄 에디터)
고속정은 해군이 연안 정찰을 위해 사용하는 빠른 속도의 소형 선박을 말한다. 크기가 작아 ‘정’이라고 부르며, 이런 역할을 하는 선박이 ‘함’으로 불릴 만큼 크기가 크면 고속함이라고 한다. 해군에서는 통상 군용선박의 배수량 500톤을 기준으로 적으면 ‘정’ 크면 ‘함’을 붙인다.
대한민국 해군은 1945년 11월 서울 안국동에서 ‘해방(海防)병단’을 창단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1946년 6월 군정 법령에 따라 해방병단은 조선해안경비대로 새롭게 출범했으나 이 때까지 단 한 척의 함정도 보유하지 못했다.
해군은 1946년 10월 미 육·해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하던 보병 상륙용 주정 LCI(Landing Craft Infantry) 2척을 최초로 인수하면서 1948년 8월까지 총 34척의 함정을 보유하게 됐다.
전투함은 해군 부인들의 정성어린 성금과 해군 장병들의 모금을 기반으로 1950년 4월 미국에서 600톤급 백두산함을 최초로 인수했다. 이후 금강산함, 삼각산함, 지리산함 등을 인수하여 창군 당시 해군의 주력함으로 삼았다.
광복 직후 나라 형편으로 볼 때, 함정을 건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만 일본 해군이 건조하다가 중단한 경비정을 자체 기술로 건조해 1947년 진수시키면서 해군의 연구개발은 시작됐다. 해군은 이 함정을 제1충무공정으로 명명했다.
해군은 6ㆍ25 전쟁 중인 1951년 3월 해군본부 함정국 산하에 해군기술연구소를 창설하고 두 번째 수상함인 제2충무공호를 건조했다. 이 연구소는 1952년 해군 과학연구소가 창설된 후 부설기관이 되었다.
1970년대 초까지도 해군은 함정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지 못했고, 대신 1955년 1월 미 해군 선박 대여에 관한 한미 협정에 따라 경비함, 상륙함, 호위구축함, 고속수송함, 상륙로켓함 등을 속속 도입했다. 1970년 당시 해군의 주력은 미 해군이 퇴역시킨 구형구축함 3척, 호위구축함 3척, 호위함 4척, 수송호위함 6척 등이었다.
반면 북한은 6·25 전쟁의 교훈을 발판삼아 해군력을 집중 육성해 1967년에 이미 잠수함 4척과 코마급 미사일 초계정 4척, 고속어뢰정 50여 척을 보유했다. 1970년 6월 북한이 우리 해군의 방송선을 납치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전쟁도발 행위로 간주하고 시급히 고속정 확보를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에 설계를 맡으라고 지시했고, 해군은 중형고속정(PKM : Patrol Boat Killer, Medium) 건조안에 대해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후 KIST와 기본설계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해군은 또 해군본부에 함정 건조를 담당할 조함과도 신설했다. 1973년 3월 건조가 완료되어 해군에 2척이 인도된 이 고속정은 KIST 보트 또는 어로지도선이라고 불렸다.
KIST 보트의 개발은 우리나라 함정 설계능력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됐다. KIST 보트는 이후 개조를 통해 함대함미사일을 탑재한 중형 미사일고속정(PKMM : Patrol Killer Medium Guided Missile)으로 진화했다.
해군은 KIST 보트와 함께 70톤급 고속정(PK : Patrol Killer) 건조사업도 추진했다. 800만 명의 학생과 20만 명의 교직자가 낸 방위성금으로 착수한 사업이었다. 1971년 6월 대한조선공사(현 한진 중공업)와 계약을 체결했고, 1972년 11월 1호정이 진수됐다.
학생들이 낸 방위성금으로 건조했다는 의미를 담아 ‘학생호’로 명명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학생호’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남해도서 시찰 때나 여름 휴양을 위해 진해의 저도 별장을 찾을 때 다른 선박은 모두 마다하고 ‘학생호’를 애용했다고 한다.
이후 해군은 1976년부터 적 함정에 대한 요격과 항만 방어, 대간첩작전 및 연안 해전의 핵심으로 전장 37m의 참수리급 고속정(PKM)을 본격 건조했다. 코리아타코마(1999년 한진중공업에 합병) 및 한진중공업은 1993년까지 총 108척 가량 고속정을 건조했다. 78년부터 취역했고 순차적으로 퇴역이 진행 중이다.
2008년 12월 차기고속정 사업의 첫 열매인 미사일고속함(PKG) 1번함이 정식으로 취역했는데, 개발 당시 명칭은 검독수리급 A형이라고 알려진 PKX-A이다. 1번함의 이름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참수리 357호정의 정장 故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따 '윤영하함'으로 명명했기에 해군 내에서 미사일고속함은 윤영하급으로 칭한다.
금년 1월까지 총 18척이 취역했는데, 한진중공업이 1, 6∼9, 13∼15번함 등 총 8척을 생산했고, STX조선해양이 2∼5, 10∼12, 16∼18번함 등 총 10척을 생산했다. 1∼6번함의 함명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의 이름을 붙였다. 특히 부사관과 수병의 이름을 붙인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라 주목을 받았다.
이 함정은 만재배수량이 570톤급이며, 최고속도는 40노트(74km/h)에 달한다. 100개 정도의 표적을 동시에 탐지할 수 있는 신형 3차원 탐색·추적 레이더, 전자광학추적장비, 76mm 및 40mm 함포, 한국형함대함미사일 해성 등을 탑재하고 있다.
이들 무기체계는 레이더와 위성을 통해 자동으로 적에 대한 정보와 위협을 수집·분석하는 ‘검독수리 전투체계’와 연결된다. 이 함정은 또 스크루를 돌리는 대신 물을 고속으로 내뿜는 워터제트 추진방식을 채택해 적과 갑자기 조우할 경우 신속한 기동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윤영하급 고속함은 서방의 설계사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제2연평해전 후 우리나라 해군의 실전적인 의견을 수용하여 독자 설계한 최초의 함정이다. 기존 고속정보다 생존성을 강화하라는 요구가 많았고, 해상 교전을 근거리에서 지원하는 초계함 역할까지 대행하길 바라면서 성능과 배수량이 증가해 가격은 1000억 원 수준에 이른다.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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