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3(금)
 
noname012.png▲ 학도의용군 일본지회 50주년 기념식 장면. 필자(좌측 첫번째), 오공태 민단장, 신각수 주일대사(좌측 세번째), 재향군인회장, 이봉남 할아버지(우측 두번째), 유엔사 후방기지사령관이 단상에 앉아 있다. ⓒ 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는 군사외교관으로 활동했던 한국군 장교들이 해외에서 근무하며 겪은 생생한 체험담과 뒷 이야기를 소개하는 [해외무관 프리즘] 코너를 신설한다. 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가 이들을 통해 전격 공개될 예정이다. <편집자 註>


(시큐리티팩트=권태환 前 駐일본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한국 유학생 중심으로 재일 학도의용군 만들어 총 642명이 6.25 전쟁 참전해 135명 전사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국방외교의 현장에서 교류와 협력의 가교 역할을 하는 국방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전략적 선택과 현실적 여건 사이에서 고민했던 기억들이 새롭다. 하지만 일본 근무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재일 학도의용군 회장이신 당시 93세의 이봉남 할아버지와의 만남이었다.

재일학도의용군은 1950년 당시 일본의 대학 및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한국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총 642명이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고자 6.25 전쟁에 참전했다.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에 유학하던 이스라엘 학생들이 참전을 위해 자진 귀국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일이 벌어지기 17년 전에 이미 한국에서 같은 상황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연구 활동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재일 학도의용군에 지원했고, 이 가운데 인천상륙작전에서 52명, 장진호 전투에서 83명 등 총 135명이 전사했다. 전사자들 중 일부의 유해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지만, 유해를 찾지 못하거나 다른 이유로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분들이 더 많았다.

한국대사관 무관부, 학도의용군 일본지회 창립 50주년 기념행사 열고 기뻐했으나 언론 비판 보고 '각성'

지난 2012년 8월 7일 주일 한국대사관 무관부는 중앙민단과 공동으로 학도의용군 일본지회 창립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봉남 할아버지를 비롯한 6.25 참전용사들이 창립 이후 최초라며 기뻐하시던 당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날 행사에는 6.25 전쟁에 참전했던 16개국의 주일대사 및 무관들도 참석했으며, 한국 국방부는 국방장관 감사장을 통해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성황리에 뜻깊은 행사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연합뉴스는 “겨우 63년 만에 감사장 하나...”라는 기사를 실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감사장을 받은 강성심 할머니(인천상륙작전 당시 전사한 박태벽 할아버지의 처)를 기자가 취재한 결과,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국가로부터 전사자로 인정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박태벽 할아버지 전사 기록 찾아내 강성심 할머니 유가족 연금 받을 수 있도록 조치

나는 취재를 담당했던 연합뉴스 기자를 찾아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동안 몰라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모두가 힘을 합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 후 국방부와 국가보훈처 등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다방면으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했다.

마음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더니 믿기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 국가보훈처에서 심혈을 기울여 과거 기록을 확인하던 차에 전산 기록에는 누락되었던 박태벽 할아버지의 전사 기록과 처 강성심, 그리고 두 살된 딸의 이름이 발견된 것이었다. 군 생활을 통해 많은 감동의 순간이 있었지만 당시의 기쁨은 그 어떤 순간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강성심 할머니의 63년을 보상해 드릴 수는 없었지만, 박태벽 할아버지의 국가를 위한 거룩한 희생이 인정되면서 한 가정의 명예가 회복되는 감격어린 순간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재일 학도의용군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던 많은 분들이 마치 자기 일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때부터 강성심 할머니는 한국 정부로부터 유가족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봉남.png▲ 충혼비 건립 기념행사 중 경례하는 이봉남 할아버지. 이 행사에는 유흥수 주일 대사를 비롯해 16개 참전국 대사와 무관들이 참석했다. ⓒ 연합뉴스

재일 학도의용군 회장인 이봉남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인 충혼비 건립 지원해 성사시켜 
 
이를 계기로 학도의용군 일본지회와 주일 한국대사관 무관부는 세대를 뛰어넘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봉남 할아버지가 다시 나를 찾아오셨다. 할아버지는 “매년 6.25 참전행사 후에 유해를 찾지 못한 분들을 위해 근교 절에서 명복을 빌곤 했는데, 그분들을 위해 충혼비를 세우는 것이 남은 생애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리시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대한민국 군인의 한 사람으로 국가를 대신해 사과부터 드린 후 곧바로 당시 유흥수 대사님께 이 내용을 말씀드렸다. 유 대사님은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가가 해야 할 책무”라고 말씀하시고 충혼비 건립을 추진해 나가도록 지침을 주셨다.

대사관과 중앙민단이 함께 노력하여 충혼비 건립을 추진한 결과, 지난 2013년 10월 3일 동경 총영사관이 있는 중앙민단 본부 앞에 6.25 전쟁에서 전사하신 135분을 위한 충혼비가 세워졌다. 평생의 소원을 이루신 이봉남 할아버지는 지난 2016년 4월 10일 세상을 떠나셨다.

하지만 본인이 뜻을 세우셨던 일이 마무리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천국에서 옛 전우들과 만나셨으리라 믿는다. 늦었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어 정말 감사했다.
 
권태환200.png
 
한국국방외교협회장(예비역 준장)
안보경영연구원 국제정세분석센터장
한일 군사문화학회 부회장
前 駐일본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일본 육군대학 및 국방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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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무관 프리즘] ③ 조국위해 희생한 세계 최초 재외국민 '재일 학도의용군'의 역사혼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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