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지기를 기르고 큰 인물을 키우는 제대로 된 대학교를 만드는 것이 위트컴 장군에 대한 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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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03 09:02
윤인구의 꿈과 교육사상이 녹아 건축된 1950년대 말 부산대 전경, 활 형태의 무지개 문과 본관 건물을 배경으로 학생들이 기념 촬영한 모습 [사진=박주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윤인구 총장의 꿈과 교육사상은 위트컴 장군의 노력으로 165만 ㎡(50만 평)의 부지 확보와 온천장~부산대 길이 1.6㎞의 진입도로 개설 및 대한미군원조처(AFAK)를 통한 캠퍼스 시설 공사비 25만 달러 지원만으로 구현하기에는 부족했다.
1957년 세워진 무지개 문은 윤 총장의 꿈과 교육사상에 따른 하늘로 높이 화살을 쏘아 올리는 형상이다. 설계자의 의도대로 이 문을 통해 학생들이 드나들고 금정산을 배경으로 하늘과 구름이 무시로 오고 가며 활시위처럼 당겨진 무지개 문의 한 중간에는 종을 매달았다.
교육은 어딘가에 있을, 어딘가에 닿을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윤 총장은 "교육가는 차가운 돌맹이에서 혈맥이 뛰는 생명체를 제작해 내려는 사람이다"고 정의했다. 교육가는 창조적 마인드를 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초대형 프로젝트를 계획한 윤 총장은 1958년 프랑스에서 귀국한 당대 최고의 건축가 김중업을 만나 본관 건물(현 인문관) 설계를 요청한다. 그의 두뇌와 김중업의 감각이 결합되자 시너지가 만들어졌다.
본관 건물의 중앙 홀은 5층까지 전면유리로 꾸며졌다. 안에서 창밖을 보면 아스라한 도심 풍경 속에 황령산까지 눈에 잡힌다. 맑고 푸른 날 바깥에서 이 건물을 보면 둥근 유리벽에 하늘과 구름이 넘실거린다. 광명이 주는 진리가 숨쉬는 모습이다.
70m에 이르는 필로티, 즉 공중에 떠 있는 공간은 자유를 상징한다. 이 속으로 금정산의 바람이 드나든다. 윤 총장은 자유를 '만사에 구애받지 않음'이라며, 이는 주어진 환경과 여건 등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을 돌파하는 능력을 말한다고 했다. 대학정신의 소중한 덕목이다.
완공 행사때 당시 문교차관 김선기는 "궁궐같다"고 했고, 유네스코에서는 낭비라고 일침을 놨다. 그러나 윤 총장은 "호연지기를 기르고 큰 인물을 키우려면 그만한 그릇이 필요한 법"이라고 응수했다.
본관 건물 공사비는 당시 기준으로 약 300억 원이 들어갔다. 1958년과 최근을 비교하면 그동안 한국은 359배 성장했다. 금값의 인플레를 고려하면 67배의 실질성장이다. 단순 계산으로 '300억×67' 하면 약 2조 원이 된다.
전쟁 직후 가난에 허덕이는 상태에서, 그것도 지방에서 국가가 지으라고 한 것도 아닌 대학의 본관 건물을 이렇게 웅장하고 미려하게 지을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윤인구 총장은 이렇게 도약한 학교로 만드는 것이 위트컴 장군에 대한 보답이라고도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위트컴 장군의 부산대 방문은 우연이 아닌 희망의 만남이 되어 학교를 지을 땅도 없고 돈도 없는 윤인구와 부산시민에게 역사적인 인재 육성의 기틀이 조성되는 계기였다. (다음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