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최석윤 기자]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비트(Bybit)가 북한의 악명 높은 해킹 조직 라자루스 그룹(Lazarus Group)에게 탈취당한 막대한 양의 암호화폐 자금 추적에 여전히 박차를 가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각)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바이비트의 공동 설립자 겸 CEO인 벤 저우(Ben Zhou)는 지난 2월 발생한 이 초대형 해킹 사건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탈취 자금의 상당 부분이 추적 가능한 상태로 남아있다고 밝혔다.
벤 저우 CEO는 21일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해킹된 바이비트 자금에 대한 상세한 요약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총 14억 달러(약 1조9800억원)에 달하는 해킹 자금 중 68.6%는 여전히 '추적 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7.6%는 여러 단계를 거쳐 추적이 어려운 '암흑 상태'에 놓였으며, 3.8%는 바이비트 측의 노력으로 동결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저우 CEO는 추적이 불가능해진 자금의 상당 부분이 암호화폐 믹서(거래 기록을 섞어 추적을 어렵게 만드는 서비스)를 거쳐 여러 '암호화폐 다리'(서로 다른 블록체인 간 자산 이동을 돕는 서비스)를 통해 개인 간(P2P) 거래 플랫폼이나 장외거래(OTC) 플랫폼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라자루스 그룹과 연계된 해커들은 바이비트의 콜드 월렛(인터넷과 분리된 안전한 지갑) 시스템의 취약점을 악용하여 암호화폐 거래소 역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될 14억 달러 상당의 디지털 자산을 탈취했다.
저우 CEO는 "최근 북한 해커들이 주로 사용하는 믹서가 '와사비(Wasabi)'인 것을 확인했다"고 언급하며, 비트코인(BTC)이 와사비 믹서를 거친 후 "일부는 크립토믹서(CryptoMixer), 토네이도 캐시(Tornado Cash), 레일건(Railgun)으로 유입됐다"고 덧붙였다. 토네이도 캐시와 레일건은 익명성 강화를 특징으로 하는 암호화폐 믹서 서비스이다.
구체적으로, 저우 CEO는 약 9000만 달러(약 1270억원) 상당의 944개 비트코인이 와사비 믹서를 거친 것을 확인했다. 또한, 탈취된 자금은 쏜체인(THORChain), eXch, 롬바르드(Lombard), LI.FI, 스타게이트(Stargate), 선스왑(SunSwap)과 같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여러 블록체인 간 이동 및 암호화폐 교환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개인 간 거래나 장외거래 서비스를 통해 현금화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총 12억1000만 달러(약 1조7000억원) 상당의 약 84%에 해당하는 43만2748개의 이더(ETH)가 쏜체인(THORChain)을 통해 이더리움 블록체인에서 비트코인 블록체인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저우 CEO는 이 중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9억6000만 달러(약 1조3600억원) 상당 이더가 3만5772개의 서로 다른 지갑을 거쳐 1만3개의 비트코인으로 전환되었다고 밝혔다.
다행히 모든 자금이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저우 CEO는 약 1700만 달러(약 2400억원) 상당 이더가 여전히 1만2490개 지갑에 걸쳐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남아 있다고 보고했다. 이는 바이비트와 국제 공조 수사 기관의 지속적인 추적 노력을 통해 일부 자금 회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이비트는 해킹 자금 동결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총 1억4000만 달러의 파격적인 현상금을 내걸고 '라자루스 바운티(Lazarus Bounty)'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저우 CEO는 지난 60일 동안 접수된 5443건의 제보 중 70건만이 유효한 정보로 판단되었으며, 현재까지 12명의 '현상금 사냥꾼'에게 총 230만 달러(약 32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고 밝혔다. 특히 맨틀(Mantle) 레이어-2 플랫폼이라는 한 기관의 결정적인 제보를 통해 4200만 달러(약 590억원) 상당의 자금을 동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저우 CEO는 "더 많은 제보를 환영하며, 앞으로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믹서를 해독할 수 있는 더 많은 현상금 사냥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암호화폐 믹서 추적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동시에 정보 제공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다.
한편, 지난 17일에는 암호화폐 거래소 eXch가 바이비트 해킹으로 인한 자금 세탁에 이용되었다는 보도가 나온 후 오는 5월 1일부로 운영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해킹 자금 추적 과정에서 자금 세탁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거래소까지 압박하는 국제적인 공조 수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바이비트와 벤 저우 CEO의 지속적인 자금 추적 노력 공개는 거액의 암호화폐 해킹 사건 발생에도 불구하고 범죄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