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권과 통신업계에서 연이어 전산 해킹 사고가 발생하며 보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GA(보험대리점) 2곳이 해킹 공격을 받아 금융당국과 금융보안원이 긴급 현황 파악에 나섰다. 지난 19일 SK텔레콤의 시스템까지 해킹당해 고객 유심(USIM) 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에 이은 사고로 개인 정보 유출 '뇌관' 유출 우려가 심각해지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금융보안원은 보험 통합 플랫폼을 제공하는 IT 기업 A사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2개 GA에 대한 해킹 및 정보 유출 여부를 조사 중이다. 해킹은 A사 프로그램에 악성코드를 감염시킨 후,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GA의 전산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A사와 거래하는 GA가 수십 곳에 달한다는 점이다. 만약 이번 해킹이 A사의 시스템 자체의 취약점을 이용한 것이라면, 다른 GA들 역시 해킹 시도의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GA는 보험 계약자의 질병 정보를 포함한 민감한 개인 정보를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어, 정보 유출 시 대규모 피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아직 개인정보 유출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다양한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GA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하지 않고 외부 IT 기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보안 관리에 취약한 점을 지적하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사들의 보안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보다 앞서 지난 19일 밤에는 SK텔레콤의 내부 시스템이 해킹당해 고객 유심 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유출된 정보는 가입자 전화번호, 고유식별번호 등 유심 정보와 음성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정보 등을 통합 관리하는 '홈가입자서버'(HSS)의 데이터베이스이다.
SK텔레콤 측은 유출 가능성을 인지한 즉시 악성코드를 삭제하고 해킹 의심 장비를 격리 조치했으며, 아직 정보가 악용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심 정보는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격자는 유출된 IMSI(국제 모바일 가입자 식별 번호) 정보를 이용해 스푸핑 공격을 감행, 피해자의 전화 통화나 문자 메시지 내용을 엿보거나 위치를 추적하고, 심지어 과금 피해까지 입힐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비상대책반을 가동하고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전문가를 파견하여 정확한 유출 원인과 규모, 항목 등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해가 의심될 경우 즉시 통신사에 신고하고, 보안 프로그램을 통해 추가적인 정보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잇따른 금융 및 통신사의 해킹 사고는 2014년 발생했던 카드사 개인 정보 유출 사태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KB국민카드를 비롯해 NH농협카드, 롯데카드의 고객정보 총 1억400만건 유출로 인해 사회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으며, 금융권의 보안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이번 GA 해킹과 SK텔레콤 유심 정보 유출 사건은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닌, 금융 및 통신 업계 전반의 보안 취약성을 드러내는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GA와 같이 여러 금융회사의 정보를 취급하거나, SK텔레콤처럼 방대한 개인 정보를 보유한 기업의 보안이 뚫렸다는 사실은 언제든 더 큰 규모의 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일부 금융 지주사나 보험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망분리 등의 사전 조치를 취했지만, 대다수의 회사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특히 GA뿐만 아니라 자산운용사 등 전산 관리가 취약한 소규모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한 해킹 시도가 늘고 있다는 점은 추가적인 피해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 회사들의 정보 보안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보다 강력한 보안 대책 마련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IT 기술 발전에 발맞춰 진화하는 해킹 수법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대비가 필요하며, 금융 및 통신사들은 보안 투자 확대와 함께 임직원들의 보안 의식 강화가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