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최석윤 기자] 현대전의 풍경이 바뀌었다. 미사일이 빗발치고, 저가형 드론이 하늘을 뒤덮는다. 마하 5를 넘나드는 극초음속 위협까지 등장했다. 전장의 규칙이 바뀌는 이 혼란의 중심에 한 기업이 서 있다. 바로 이스라엘의 라파엘(Rafael Advanced Defense Systems)이다.
많은 이들이 라파엘을 단순히 ‘아이언 돔’을 만든 회사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숫자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수주 잔고 670억 셰켈(약 30조 원). 라파엘이 확보한 일감이다. 앞으로 4년 동안 새로운 계약을 하나도 따지 않아도 공장을 풀가동해야 하는 엄청난 물량이다. 전쟁은 비극이지만, 방산 기업에게는 냉혹한 기회다. 라파엘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단순한 기술 기업을 넘어, 숫자로 자신을 증명하는 ‘거인’이 되었다. 오늘, 세계 방산 시장을 뒤흔드는 라파엘을 해부한다.
라파엘의 최근 성적표는 놀랍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 국제 사회의 정치적 견제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실적은 수직 상승했다. 2023년 말 기준, 라파엘의 연간 매출은 140억 셰켈(약 6조 4000억 원)을 돌파했다. 전년 대비 30% 가까이 폭증한 수치다.
더 무서운 것은 미래를 보여주는 지표인 수주 잔고(Backlog)다. 현재 라파엘의 곳간에는 670억 셰켈(약 30조 원) 어치의 주문이 쌓여 있다. 이는 라파엘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이스라엘 국방부의 긴급 발주뿐만 아니라, 안보 불안을 느낀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의 러브콜이 쇄도한 결과다.
세계 방산 시장에서의 위상도 달라졌다. 미국의 군사 전문지 디펜스 뉴스(Defense News)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방산기업' 순위에서 라파엘은 꾸준히 30~40위권을 마크하고 있다. 록히드마틴이나 레이시온 같은 초대형 공룡 기업들에 비하면 덩치는 작다. 하지만 이익률과 성장세는 그들을 압도한다. '작지만 가장 매운 고추'가 바로 라파엘이다.
아이언 돔이 끝이 아니다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에 본사를 둔 라파엘은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민간 기업의 외피를 썼지만, 그 뿌리는 국방부 연구소다. 이 태생적 특징이 라파엘의 DNA를 결정했다. 그들은 ‘팔리는 물건’보다 ‘살아남는 기술’을 먼저 고민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오늘날 라파엘의 무기 체계는 영국, 미국, NATO 회원국 등 전 세계 20여 개국 군대의 신경망이 되었다. 그들의 시스템은 ‘개방형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를 지향한다. 어떤 무기 체계와도 레고 블록처럼 끼워 맞출 수 있다. 이 유연함이 라파엘의 무기다. 거대 방산 기업들이 덩치를 키울 때, 라파엘은 속도와 효율을 택했다.
1948년, 이스라엘은 건국과 동시에 주변 아랍국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무기가 부족했다. 수입할 길도 막막했다. 국방부 산하에 '과학 부대(Science Corps)'가 창설된 배경이다. 이것이 라파엘의 전신인 ‘HEMED’다.
초기 라파엘의 미션은 단순했다. "없으면 만들어라."
맨땅에 헤딩하듯 기술을 쌓았다. 1950년대부터 미사일 기술에 집중했고, 1960년대 이후 잇따른 중동전쟁을 거치며 실전 데이터를 축적했다. 피로 쓴 데이터였다.
2002년, 라파엘은 국영 기업으로 법인화된다. 연구소의 두뇌에 기업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장착한 순간이다. 이후 성장은 폭발적이었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동시에,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수출 주도형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제 그들은 단순한 연구 집단이 아니다. 연 매출 절반을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글로벌 플레이어다.
라파엘의 기술력은 '방패'와 '창', 그리고 '갑옷'으로 요약된다.
△ 아이언 돔 (Iron Dome): 가성비의 미학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방패다. 2011년 실전 배치 이후 5000회 이상의 요격 기록을 세웠다. 성공률은 90%를 상회한다. 하지만 진짜 기술은 ‘눈’에 있다. 아이언 돔의 타미르(Tamir) 요격기는 똑똑하다. 레이더가 포착한 로켓이 사람이 없는 공터로 날아가면? 쏘지 않는다. 무시한다. 인구 밀집 지역으로 향하는 위협만 골라 타격한다. 이 알고리즘이 천문학적인 방위비를 아꼈다. 이것이 라파엘이 말하는 ‘경제적인 전쟁’이다.
△ 스파이크 (Spike) 미사일: 정밀 타격의 교과서
방어가 아이언 돔이라면, 공격은 스파이크다. 헬기, 차량, 함정, 보병 등 어디서든 쏠 수 있다. 발사 후 망각(Fire and Forget) 방식은 기본이다. 미사일이 날아가는 도중 목표물을 바꿀 수도 있다. 한국군도 도입했을 만큼 성능은 확실하다. 전 세계 40개국 이상이 사용하는 베스트셀러다.
△ 트로피 (Trophy) APS: 전차의 수호신
대전차 미사일이 날아오면 전차가 스스로 요격한다. SF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라파엘의 능동 방어 시스템(APS) 트로피 이야기다. 전차를 향해 날아오는 로켓을 레이더로 감지하고, 산탄을 발사해 공중에서 파괴한다.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된 이 시스템은 전차 생존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미군의 M1 에이브람스 전차도 이 시스템을 쓴다.
"우리는 고등학생이다. 세상 대부분은 아직 초등학생이고."
라파엘 CEO 요아브 투르그만의 말이다. 기술적 자신감이 묻어난다.
라파엘의 비즈니스 환경은 녹록지 않다. 최근 가자 지구 전쟁으로 인해 국제적인 반이스라엘 정서가 커졌다. 프랑스 무기 박람회 참가가 막혔고, 스페인은 계약을 취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르그만은 담담하다. "비난 속에서도 주문은 밀려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들이 라파엘을 찾는 이유는 정치적 지지 때문이 아니다. 당장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미사일을 막아줄 검증된 시스템이 필요해서다. 라파엘은 R&D 예산을 전년 대비 35%나 증액했다. 벌어들인 돈을 다시 기술에 쏟아붓는다. 이것이 ‘정치적 보이콧’을 뚫는 라파엘만의 생존법이자, 압도적 실적의 비결이다.
라파엘의 시선은 이미 다음 전쟁을 향해 있다. 키워드는 레이저와 극초음속이다.
△ 아이언 빔 (Iron Beam): 무제한의 탄창
미사일 요격은 비싸다. 아이언 돔 한 발에 수천만 원이 든다. 적은 100달러짜리 드론을 떼로 날려 보낸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해결책은 아이언 빔이다. 100kW급 고에너지 레이저다. 요격 비용? 전기 요금 정도다. 한 발에 커피 한 잔 값(약 2~3달러)이면 충분하다. 탄약 제한도 없다. 전력만 공급되면 무한대로 쏠 수 있다. 빛의 속도로 날아가니 피할 수도 없다. 올해 말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이것은 게임 체인저다.
△ 스카이 소닉 (Sky Sonic): 극초음속 사냥꾼
마하 5 이상의 극초음속 미사일은 현존하는 방공망으로는 막기 힘들다. 라파엘은 이에 맞서 스카이 소닉 요격기를 개발 중이다. 불규칙하게 기동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의 궤적을 예측하고 따라잡는다. 이란의 극초음속 위협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다.
라파엘은 증명했다. "위협이 혁신을 만들고, 혁신은 실적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끊임없는 전쟁의 공포를 기술적 우위로 극복했다. 모든 무기 체계가 실전에서 검증(Combat Proven)되었다는 점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쟁력이다. 30조 원이 넘는 수주 잔고는 그 신뢰의 증거다.
대한민국 역시 휴전 국가다. K-방산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지금, 라파엘의 행보는 좋은 교과서다. 단순히 무기를 파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생존을 담보할 기술을 팔아야 한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환경에서 피어난 기술. 그것이 라파엘이 전 세계 방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비결이다.
아이언 돔은 시작이었다. 이제 라파엘은 레이저로 하늘을 지키려 한다. 그들의 창과 방패는 내일도 진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