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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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X의 'MIM-104 패트리어트

 

[시큐리티팩트=최석윤 기자] 록히드 마틴이 화려한 무대의 주연 배우라면, 이들은 무대 그 자체이자 조명이며, 배우가 숨을 쉬게 하는 공기다. 전투기 형상을 만드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육중한 쇳덩이를 음속으로 밀어붙이는 엔진, 수백 킬로미터 밖 적을 찾아내는 레이더, 그리고 적 심장에 정확히 꽂히는 미사일. 이 모든 핵심 기능을 장악한 기업이 있다. 바로 RTX(구 레이시온 테크놀러지)다.

 

대중은 록히드 마틴과 보잉이 제작한 미국 공군의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의 날렵한 외형에 환호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안을 채운 센서와 엔진에 주목한다. RTX는 현대전의 '눈'과 '창', 그리고 '심장'을 만드는 기업이다. 2020년, 미사일 명가 '레이시온'과 항공 엔진의 제왕 '유나이티드 테크놀러지(UTC)'가 합쳐졌다. 단순한 합병이 아니었다. 항공우주와 방산의 경계를 무너뜨린 '메가 딜'이었다. 이제 그들은 RTX라는 이름으로, 전쟁의 문법을 새로 쓰고 있다.

"우리는 쏘지 않는다, 타격할 뿐이다"… 미사일의 제왕

우크라이나 전쟁은 RTX에게 거대한 쇼케이스였다. 러시아가 자랑하던 극초음속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킨잘'. 푸틴은 "막을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그 신화는 깨졌다. RTX가 만든 'MIM-104 패트리어트' 앞에서다.

 

패트리어트는 늙지 않았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스커드 미사일을 잡으며 '미사일 잡는 미사일'로 데뷔했던 이 노장은 끊임없는 개량을 통해 21세기에도 가장 신뢰받는 방패가 됐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상공에서 킨잘을 격추하는 순간, 전 세계 군 관계자들은 다시금 계산기를 두드렸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다." 주문이 쇄도했다. RTX의 미사일 방어 부문은 공장이 쉴 틈이 없다.

 

방어만 하는 게 아니다. 공격의 대명사 '토마호크(Tomahawk)' 역시 이들 작품이다. 미군이 전쟁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토마호크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 적 지휘부를 외과 수술하듯 도려낸다. 'SM-6', '암람(AMRAAM)' 등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유도무기 태반이 RTX 로고를 달고 있다. 록히드 마틴이 발사대(플랫폼)를 만든다면, 적을 죽이는 건 결국 RTX 미사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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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랫 & 휘트니(P&W)의 GTF(Geared Turbofan) 엔진

 

자회사 프랫 & 휘트니(P&W), 세계 3대 항공 엔진 제작사

RTX가 다른 방산 공룡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엔진'이다. 자회사인 '프랫 & 휘트니(P&W)'는 제너럴 일렉트릭(GE), 롤스로이스와 함께 세계 3대 항공 엔진 제작사다.

 

F-22 랩터와 F-35 라이트닝 II. 미 공군의 최강 전력인 이 두 기체 모두 P&W 엔진을 단다. 특히 F-35에 들어가는 F135 엔진은 전투기 엔진 기술의 정점이다. 수직 이착륙을 가능케 하고, 막대한 전력을 생산해 레이더와 전자전 장비를 돌린다.

 

하지만 '진짜 무기'는 따로 있다. 바로 민간 여객기 시장이다. 에어버스 A320네오 등에 들어가는 GTF(Geared Turbofan) 엔진이 이들의 효자다. 방산은 국제 정세에 따라 등락이 있다. 반면 민항기 수요는 꾸준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지금, 여행 수요 폭발은 곧 RTX의 매출 폭발이다. 군수와 민수, 두 개의 심장을 가진 RTX는 불황을 모른다.

 "이름 빼고 다 바꿨다"… RTX로의 재탄생과 조직 재편

2023년 6월, 회사는 사명을 'Raytheon Technologies'에서 'RTX'로 변경했다. 100년 역사의 '레이시온'이라는 이름을 기업 전체 간판에서 내린 것이다. 이는 상징적이다. 과거 영광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티커(종목 코드)로 쓰이던 세 글자, RTX. 심플하고 강력하다.

 

조직도 군살을 뺐다.

기존 4개 사업부를 3개로 통합했다. ▲항공기 부품과 시스템을 만드는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 ▲엔진을 만드는 '프랫 & 휘트니' ▲미사일과 레이더, 방어 시스템을 통합한 '레이시온'.

 

그렉 헤이즈 전 회장의 의도는 명확했다. "중복을 없애고, 반응 속도를 높여라." 공급망 위기가 닥쳤을 때, 덩치 큰 공룡은 굶어 죽기 딱 좋다. RTX는 덩치는 유지하되, 신경망을 단순화해 민첩한 맹수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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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칼리오(Christopher T. Calio) CEO. 사진=RTX

 

그렉 헤이즈의 유산, 그리고 크리스 칼리오의 등판

RTX의 오늘을 만든 건 그렉 헤이즈(Gregory J. Hayes)다. 그는 승부사였다. 2020년 레이시온과의 합병을 주도하며 방산 업계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그 전에는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UTC)에서 오티스(엘리베이터)와 캐리어(에어컨)를 과감히 떼어냈다. 돈은 되지만 항공우주와 결이 다른 사업들은 잘라내고, 오직 '하늘과 우주'에 집중했다. 선택과 집중의 교과서다.

 

이제 바통은 크리스토퍼 칼리오(Christopher T. Calio)에게 넘어갔다. 2024년 5월, 칼리오는 CEO 자리에 올랐다. 그는 '엔진 맨'이다. 프랫 & 휘트니 사장 출신으로, 엔지니어링과 운영의 디테일을 아는 리더다.

 

헤이즈가 큰 그림을 그리는 건축가였다면, 칼리오는 그 집을 튼튼하게 관리하고 효율을 높이는 시공 소장이다. 칼리오 체제의 RTX는 더 실용적이고, 더 기술 집약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는 이미 18만 5000 명의 직원을 이끌며 연 매출 800억 달러(약 117조 원) 시대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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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X의 'AN SPY-6' 미사일

 

이지스함의 눈, SPY-6… 바다를 지배하는 레이더 기술

미 해군의 최신 이지스함에는 육각형 모양의 거대한 레이더가 붙는다. RTX가 만드는 'AN/SPY-6'다. 기존 레이더보다 감도가 30배 높다.

 

"보이지 않으면 싸울 수 없다."

스텔스기가 날아다니고, 극초음속 미사일이 떨어지는 세상이다. 먼저 보는 쪽이 이긴다. RTX는 갈륨 나이트라이드(GaN) 기반의 AESA 레이더 기술에서 독보적이다. 미 해군 함정들이 전 세계 바다에서 작전할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은 바로 이 '눈'에서 나온다. 한국 해군의 차세대 이지스함(정조대왕함)이 국산 레이더와 미국 록히드 마틴의 전투체계를 채택했지만, 그 기반 기술과 연관 무기 체계에서 RTX의 영향력은 여전히 깊숙이 관여되어 있다.

K-방산의 파트너이자 넘어야 할 산

한국 방산 기업들이 잘 나간다지만, RTX는 여전히 거대한 산이다. 우리가 KF-21 전투기를 개발했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공대공 미사일이나 핵심 센서 기술은 여전히 RTX와 협력하거나 경쟁해야 한다.

 

동시에 그들은 우리의 파트너다. 한국의 한화시스템이나 LIG넥스원 같은 기업들이 RTX와 공급망 협력을 논의한다. RTX의 거대한 생태계에 들어간다는 건, 곧 전 세계 시장으로 통하는 고속도로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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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초음속 미사일 활공체 요격기(GPI) 렌더링 이미지. 출처=RTX

 

미래는 이미 와 있다… AI와 극초음속의 결합

RTX는 지금 6세대 전투기용 적응형 엔진과 AI 기반의 군집 드론 방어 체계, 그리고 극초음속 미사일을 요격할 활공체 요격기(GPI)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활공체(Glider)는 탄도 미사일처럼 대기권 밖으로 발사된 후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며 마하 5 이상의 극초음속으로 활강(활공)하면서 목표물을 공격하는 비행체다. 기존 미사일과 달리 예측 불가능한 궤도로  움직인다. 피하는 능력이 뛰어난 차세대 무기다.

 

보잉이나 록히드 마틴이 화려한 기체를 뽐낼 때, RTX는 그 기체 안에서 조용히 승패를 결정짓는다. 레이더로 적을 찾고, 엔진으로 추격하며, 미사일로 끝낸다. 껍데기만으로는 전쟁을 할 수 없다. 현대전의 승패는 소프트웨어와 센서, 그리고 정밀 타격 능력에서 갈린다. RTX가 '방산 업계의 절대 반지'를 끼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전쟁 양상이 바뀔수록 RTX 가치는 올라간다. 재래식 전면전이든, 최첨단 전자전이든 상관없다. 그들은 모든 옵션을 가지고 있다. 100년 전 진공관을 만들던 회사는 이제 인류가 만든 가장 치명적이고도 정교한 시스템을 통제하고 있다. 세계는 불안하지만, RTX의 주가는 견고하다. 이것이 냉혹한 방산 시장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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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방산기업③: RTX] F-35 '심장'과 패트리어트 '창'을 독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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