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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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두의 자율주행 브랜드 '아폴로 고(Apollo Go)'

 

[시큐리티팩트=김효진 기자] 2026년 현재, 베이징과 우한, 충칭 등 중국 일부 대도시에서는 운전자 없이 주행하는 자율주행 택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차량 측면에는 바이두의 자율주행 브랜드 '아폴로 고(Apollo Go)' 로고가 붙어 있다. 앱으로 호출해 목적지를 입력하면 차량은 지정된 구역 안에서 스스로 움직인다.


이 장면이 중국 전역의 일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폴로 고는 정부 허가를 받은 특정 도시·특정 구역에서만 상용 운행 중이며, 기상이나 교통 여건에 따라 원격 관제 인력이 개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비스는 중국 자율주행 산업이 실험 단계를 넘어 현실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이 변화의 중심에 리옌훙(Robin Li, 李彦宏)이 있다. 바이두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그는, 서구권이 오픈AI·구글·메타를 축으로 범용 AI 경쟁에 몰두하는 동안 중국이라는 단일 언어·단일 규제 환경을 전제로 한 다른 경로를 택했다.

 '중국의 구글'에서 AI 기업으로 전환

리옌훙은 2000년 바이두를 공동 창업한 뒤, 중국 검색 시장에서 오랜 기간 1위를 지켜왔다. 2000년대 중반 구글이 중국 시장에서 철수한 이후, 바이두는 사실상 중국 내 검색의 기본값이 됐다.


그러나 그는 검색 광고 중심의 사업 모델이 영원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여러 공개 발언에서 리옌훙은 "검색은 결국 사용자를 대신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 인식은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바이두의 연구개발 방향은 눈에 띄게 바뀌었다.


바이두는 매년 매출의 상당 부분을 AI 연구에 재투자하며 자연어 처리, 음성 인식, 컴퓨터 비전 분야에서 중국 내 선도적 위치를 확보했다. 그 결과물이 2023년 공개된 대형 언어 모델 기반 서비스 '어니봇(ERNIE Bot, 文心一言)'이다.


2026년 현재 어니봇은 검색, 문서 요약, 업무 자동화, 개발 보조 등 다양한 서비스에 통합돼 있다. 다만 이를 '국가 운영을 통제하는 AI OS'로 부르는 것은 과도한 해석에 가깝다. 실제 모습은 바이두의 핵심 AI 플랫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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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옌훙(Robin Li, 李彦宏) 바이두 회장 겸 CEO. 사진=AP 연합뉴스

 

중국의 폐쇄적 데이터 환경이 만든 경쟁력

리옌훙 전략의 핵심은 개방보다 집중이다. 중국의 인터넷 환경은 해외 플랫폼 접근이 제한되고, 소수 대형 플랫폼에 데이터가 쌓이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환경에서 바이두는 검색, 지도, 클라우드, 자율주행 서비스를 통해 방대한 중국어 데이터와 행동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서구권 AI 기업들이 다국어·다문화 데이터를 기반으로 범용성을 추구한다면, 바이두의 AI는 중국어의 언어 구조, 중국 사용자 행동 패턴, 그리고 규제 환경에 맞춰 설계돼 있다. 이는 기술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 목표의 차이에 가깝다.


리옌훙이 내부 행사에서 언급한 '데이터 주권' 개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데이터를 기업의 자산이자 국가 경쟁력의 일부로 본다. 중국에서 생성된 데이터는 중국 기술 발전에 쓰여야 한다는 시각이다.

아폴로 프로젝트, 도로 위에서 축적되는 학습

자율주행 프로젝트 '아폴로(Apollo)'는 리옌훙의 장기 전략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바이두는 차량 판매보다, 차량이 만들어내는 주행 데이터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아폴로 고 차량은 주행 과정에서 도로 구조, 교통 흐름, 보행자 움직임, 날씨에 따른 주행 패턴을 지속적으로 수집한다. 이 데이터는 자율주행 알고리즘 개선뿐 아니라 AI의 공간 인식 능력을 고도화하는 데 활용된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를 '월드 모델(World Model)' 구축의 초기 단계로 해석한다. 다만 바이두는 공식적으로 이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물리적 환경 이해를 강화하는 데이터 기반 학습이라는 표현이 보다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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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두의 아폴로 로보택시. 사진=AP 연합뉴스

 

한국 반도체 산업과 현실적 연결

바이두의 데이터 센터와 자율주행 인프라는 대규모 연산 자원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발생하며, 한국 기업들이 주요 공급처 중 하나로 거론된다.


그러나 "중국의 모든 자율주행 차량에 한국산 반도체가 들어간다"는 식의 표현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실제 공급 구조는 프로젝트와 세대별로 다르다. 동시에 중국 기업들은 자국산 AI 칩 '쿤룬(Kunlun)'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반도체 업계는 단기 수요와 중장기 기술 독립이라는 두 흐름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통제와 혁신 사이, 국제 사회 엇갈린 평가

리옌훙과 바이두의 AI 전략은 국제 사회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는다. 중국의 데이터 활용 방식과 AI 규제 체계는 효율성과 안전성을 강조하는 반면, 개인정보 보호와 투명성 측면에서는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하나다. 리옌훙은 중국이라는 제도·시장 환경을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의 전제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는 서구 모델을 따라잡기보다는 다른 궤도를 선택한 결과다.

리옌홍이 설계한 중국 AI는 진화 중

리옌훙은 기술 이상주의자라기보다 환경을 읽는 현실주의자에 가깝다. 그는 지정학적 갈등과 규제를 위기가 아닌, 설계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2026년 현재 바이두의 AI가 글로벌 표준을 주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 내부에서는 실사용과 인프라 측면에서 분명한 존재감을 확보했다. 리옌훙이 설계한 이 '성벽'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다만 그 안에서 중국의 AI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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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AI를 이끄는 사람들 ⑥: 리옌훙] 검색 제왕에서 자율주행까지, 바이두의 설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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