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1 (수)
 
지난 13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여성이 이란 시위에 연대하며 당국의 진압의 항의하는 뜻에서 이마에 총상을 그려 거리에 나섰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jpg
지난 13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여성이 이란 시위에 연대하며 당국의 진압의 항의하는 뜻에서 이마에 총상을 그려 거리에 나섰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최석윤 기자] 지난 1월 13일. 런던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하메네이 초상화가 불길에 휩싸였다. 몇 시간 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테헤란 5구역 푸낙의 밤에서는 산발적인 총성이 울렸다. 이란 전역에서 이어진 반정권 시위는 25일째에 접어들었고, 유혈 충돌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물가 급등에서 출발한 분노는 성직자 기득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적 봉기로 번졌다. 그럼에도 이란 국가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21일(현지 시각) 외신은 서방의 제재, 이스라엘의 공습, 내부의 저항이라는 삼중 압박 속에서도 이슬람 공화국이 버티는 이유를 구조적으로 진단 했다.

 

혁명수비대와 준군사조직, 안보엘리트 굳건

이슬람 공화국은 태생부터 불안을 전제로 만들어진 체제다. 혁명 이후 이란은 정규군과 별도로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 그리고 준군사조직 바시즈(Basij)를 병렬적으로 키워왔다. 이들의 총 규모는 약 100만 명에 이른다. 중요한 점은 숫자가 아니다. 이 집단이 단순한 무장 조직이 아니라는 데 있다.


혁명수비대와 바시즈는 경제 공동체이자 이해관계 집단이다. 건설, 에너지, 금융, 물류 등 국가 경제의 핵심 영역을 깊숙이 장악하고 있다. 체제가 붕괴될 경우 이들이 잃게 될 것은 직위나 특권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다. 그래서 이들은 정권과 운명을 함께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외부 압력이 커질수록 안보 엘리트 내부의 이탈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결속은 강화되는 양상이다. 전 미국 외교관 앨런 에어는 이란 정권의 '뿌리 깊은 이점'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제도화된 강력한 기관, 성직자 통치에 충성하는 고정 지지층, 그리고 9,000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와 광활한 영토다.


거리의 분노가 체제를 전복하려면 보안군의 대규모 이탈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조직적인 망명이나 집단 거부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이들에게 시위 진압은 치안 문제가 아니라 체제 생존의 문제다. 전쟁에 가깝다.

 

 

이란 혁명수비대. 사진=EPA 연합뉴스.jpg
이란 혁명수비대. 사진=EPA 연합뉴스

 

단호한 처단의 공포 정치, 그리고 정보 차단

위기 국면에서 이란 정권은 익숙한 매뉴얼을 꺼내 든다. 사법부 수장 골람호세인 모흐세니 에제이가 내린 메시지는 단순했다. 관용은 없다는 것이다. 판사들에게는 신속한 판결과 단호한 처벌이 요구됐다. 시위는 공공질서 문란이 아니라 국가 안보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됐다.


이 신호는 명확하다. 사형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공포를 선제적으로 유포하는 전략이다. 동시에 기술적 통제도 강화됐다. 인터넷 감시·차단은 즉각적으로 이뤄졌다. 넷블록스 집계에 따르면 이란 전역에서 누적 인터넷 차단 시간은 이미 300시간을 넘겼다.


정보가 흐르지 않으면 저항은 연결되지 않는다. 테헤란 5구역에서 벌어진 유혈 사태가 지방 도시로 확산되지 않는 이유다. 각 지역의 분노는 고립된 채 소모된다.


물리적 폭력의 수위도 임계점을 넘어섰다. 이스파한 주 샤힌 샤흐르와 모바라케에서는 관공서 옥상에 배치된 저격수들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포했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인권 단체들이 집계한 사망자는 600명에 육박하지만, 실제 피해 규모는 그보다 클 가능성이 높다. 공포는 지금도 가장 효과적인 통치 수단으로 작동한다.

 

이란은 베네수엘라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귀환은 테헤란에 새로운 변수다.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시위대를 향해 "지원이 도착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워싱턴 일부에서는 이른바 '베네수엘라 모델'이 거론된다. 최고 권력층만 제거하고, 실무 국가 기구에는 협조를 조건으로 생존을 보장해 이탈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란은 베네수엘라가 아니다. 이란의 국가 기구는 수십 년간 이념과 이해관계가 중첩된 구조로 굳어져 있다. 외부의 군사적 위협은 종종 내부 균열이 아니라 민족주의적 결집을 낳는다. 특히 지난해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격 이후, 강경파는 외세의 침략을 명분 삼아 탄압을 정당화해 왔다.


트럼프식 접근은 장기 점령보다는 단일하고 결정적인 타격을 선호한다. 상징적 시설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9000만 인구 위에 구축된 통제 시스템을 단번에 해체하기는 어렵다.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 장면. 사진=AP 연합뉴스.jpg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 장면. 사진=AP 연합뉴스

 

대안 세력 부재, 정권은 훈련된 폭력기구

생존이 곧 안정은 아니다. 이슬람 공화국은 1979년 혁명 이후 가장 심각한 정당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영 일간지 에텔라아트(Ettela'at)조차 국민을 '폭동 가담자'로만 규정하는 방식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인정할 정도다. 빵 문제는 이념보다 무겁다.


제재로 경제는 질식 상태에 가깝다. 레바논, 시리아,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던 친이란 세력들도 이스라엘의 공세로 타격을 입었다. 지역 패권 전략은 흔들리고, 핵 프로그램 역시 약화됐다. 정권은 외부적으로 고립되고, 내부적으로는 증오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안 세력은 아직 분산돼 있고, 시위대는 뚜렷한 지도부를 갖추지 못했다. 반면 정권은 훈련된 폭력 기구와 행정 장치를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

 

붕괴보다 쇠락 과정… 변화 에너지는 존재

이란은 지금 붕괴의 순간이라기보다 쇠락 과정에 있다. 거리의 분노가 고위층의 집단 이탈로 이어지지 않는 한, 약화된 기득권은 일정 기간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 발리 나스르 교수는 체제 변화의 조건으로 "장기화된 대중 저항과 국가 기구 핵심부의 이탈"을 꼽는다.


현재의 테헤란은 거대한 감옥이자 요새다. 정권은 장갑차와 콘크리트 바리케이드 뒤로 물러서 국민과 대치하고 있다. 시위는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지만, 권력의 핵심은 아직 단단한 보호막 안에 있다.


변화 에너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그 힘이 성직자 기득권의 둑을 무너뜨리기에는 아직 물리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2026년의 이란은 지지 위에 선 국가가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억압 장치 위에서 간신히 유지되는 체제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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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불타는 테헤란] 그럼에도 왜? 이란 정권은 무너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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