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최석윤 기자] 유럽의 동부 전선이 거대한 '실험실'이자 '기계의 요새'로 변모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와 맞닿은 국경 지대에 인간 병력 대신 인공지능(AI)과 무인 전력을 전면 배치하는 '자동화 방어 구역(Automated Defense Zone)' 구축에 나섰다. 이는 AI가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전쟁의 가장 앞줄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리는 명확한 신호다.
토마스 로윈 나토 작전 부참모장은 최근 독일 매체 '벨트 암 존탁'과 인터뷰에서 인적 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방어 체계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구상의 핵심은 적군이 재래식 전투 구역에 진입하기 전, AI와 로봇이 먼저 대응하는 '1차 완충지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국경 방어가 보초병과 철책에 의존했다면, 자동화 방어 구역은 지상과 공중, 우주, 그리고 사이버 공간을 촘촘하게 엮은 센서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전선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이 네트워크는 적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무기 배치를 포착해 32개 회원국에 즉각 공유한다. 데이터가 곧 방어선이 되는 셈이다.
이 시스템의 실질적인 타격력은 첨단 무인 전력에서 나온다. 위협이 감지되는 순간 드론 군집과 반자율 전투 차량, 지상 로봇이 즉각 반응한다. 자동 방공망과 미사일 요격 시스템은 인간의 인지 속도를 넘어서는 초고속 대응을 담당한다. 최전방에서 피를 흘려야 했던 인간의 자리를 기계가 대체하는 구조다.
나토가 추진하는 무인 전력의 핵심은 '반자율성'과 '통합성'이다. 단순히 원격으로 조종하는 드론을 넘어서, 전장 상황을 스스로 인식하고 최적의 대응 경로를 계산하는 지상 로봇과 전투 차량이 전면에 나선다.
△ 지상 로봇 및 반자율 차량: 험지에서도 기동이 가능한 지상 로봇(UGV)은 매복과 정찰을 수행하며, 적 병력 진입 경로에 직접 배치되어 물리적 저지선 역할을 한다.
△ 다층적 드론 체계: 정찰용 초소형 드론부터 공격용 자폭 드론까지, 하늘은 무인기들의 감시망으로 덮인다.
△ 지능형 방공 시스템: AI가 비행체의 궤적을 분석해 위협 수준을 판별하고, 가장 효율적인 요격 수단을 자동으로 선택한다.
이러한 전력 배치는 병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현재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는 이 기술들을 통합 운영하기 위한 시험 작업이 한창이다. 나토는 2027년 말까지 이 시스템을 실제 전력화하겠다는 구체적인 시한을 확정했다.
나토 차원의 움직임과 별개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개별 국가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폴란드는 유럽 최대 규모 대(對) 드론 시스템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국방장관은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를 "긴급한 작전상의 요구"라고 규정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목격한 드론의 파괴력이 폴란드의 방어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다.
폴란드의 방공망 강화는 나토 자동화 방어 구역과 맞물려 거대한 기술적 장벽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러시아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물리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이제 안보는 외교적 수사보다 알고리즘의 정확도와 하드웨어의 가동률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AI가 전면에 나섬에 따라 발생하는 윤리적, 책임적 문제에 대해 나토는 선을 그었다. 로윈 부참모장은 살상 무기 사용의 최종 결정권은 항상 인간에게 있음을 명시했다. AI는 표적을 식별하고 추적하며 최적의 타격 방안을 제안할 뿐, '방아쇠'를 당기는 주체는 여전히 사람이라는 원칙이다.
하지만 전장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초단위로 승패가 갈리는 현대전에서 인간 판단을 기다리는 과정이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간의 개입(Human-in-the-loop)'이라는 원칙과 AI 효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향후 시스템 운용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2027년, 나토 구상이 현실화되면 유럽 국경은 세계에서 가장 고도화된 AI 전쟁터가 된다. 이는 단순한 무기 교체가 아니다. 전쟁의 정의가 바뀌는 사건이다. 병사들의 숙련도보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속도가 중요해진다. 보급로 안전보다 데이터 링크 보안이 우선시된다.
AI는 이제 전쟁의 후방 지원 부서에서 벗어났다. 기계는 가장 위험한 곳으로 전진하고 있다. 나토의 자동화 방어 구역은 그 서막에 불과하다. 미래 전쟁은 인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어, 인간이 판단하기 전에 이미 기계들에 의해 그 향방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전쟁은 더 건조해지고, 더 정교해졌다. 그리고 더 치명적인 기술의 영역으로 이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