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06 (금)
 
미쓰비시중공업 잠수함. 출처=일본 해상자위대.jpg
미쓰비시중공업 잠수함. 출처=일본 해상자위대

 

[시큐리티팩트=최석윤 기자] 한국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가공할 생산 속도를 앞세워 '지상전의 신흥 강자'로 세계 시장을 누비는 사이, 바다 건너 열도에서는 오랜 침묵을 깨고 묵직한 검을 다시 뽑아 드는 거인이 있다. 바로 일본 방위산업의 자존심, 미쓰비시 중공업(Mitsubishi Heavy Industries, 이하 MHI)이다. 일본 정부가 방위비를 대폭 증액하고 '반격 능력' 보유를 공식화한 이후, MHI는 이제 '방패'를 넘어 적을 직접 타격하는 '창'의 핵심 제작자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언론은 2025~2026년 연쇄 보도를 통해 "일본의 방위비 확대가 특정 기업을 중심으로 산업 재편을 가속하고 있으며, 그 정점에 MHI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한 기업 성장 서사를 넘어, 일본이라는 국가 전략이 물리적 실체로 구현되는 과정이라는 평가다.

미사일잠수함항공기 3대 핵심 전력에서 독점적 지위

MHI의 방위·우주(ADS) 부문 실적은 일본의 안보 의지를 가장 투영하는 거울이다. 2024 회계연도 기준 MHI의 전체 수주액은 7조 엔(약 66조 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 중 ADS 부문이 성장을 견인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방위 부문 수주 잔고가 약 2조 6000 엔(약 24조 원) 규모에 달하며, 이것이 단발성이 아닌 다년 계약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산 전문가들은 이러한 수치에 대해 "미사일, 잠수함, 항공기 등 3대 핵심 전력에서 MHI가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굳혔다"고 진단한다. 다만, 폐쇄적인 내수 중심 구조로 인한 높은 단가와 부족한 해외 수출 실적은 여전한 아킬레스건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진정한 경쟁력을 확보하기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12식 지대함 유도탄(Type 12 SSM). 출처=MHI.jpg
12식 지대함 유도탄(Type 12 SSM). 출처=MHI

 

적의 심장을 겨누는 '창', 12식 유도탄의 사거리 혁명

MHI 방산 전략의 최전선에는 12식 지대함 유도탄(Type 12 SSM) 개량형이 서 있다. 일본 방위성은  2025년 10월, 함정 및 잠수함 발사형 Type 12 유도탄의 양산 계약을 MHI와 체결하며 '반격의 서막'을 알렸다. 이 미사일들은 2027년 실전 배치를 목표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은 사거리다. 기존 200km 수준에 불과했던 사거리를 1,000km 내외로 확장하며 일본이 갈망하던 '스탠드오프(Standoff) 능력'의 실체를 확보했다. 특히 방위성이 이 개량형 유도탄을 구마모토 방면에 우선 배치하기로 한 결정은 중국과 러시아의 해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극초음속 유도탄 개발, 올해부터 양산 

일본의 야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25년 8월 현지 보도에 따르면, 방위성은 2026 회계연도 예산에 극초음속 유도탄 개발비를 대규모 반영하고 당장 올해부터 양산 착수에 들어간다. 음속의 5배 이상으로 날아가 방공망을 무력화하는 이 무기는 일본 억지력의 '게임 체인저'가 될 전망이다.


이는 기존 수동적인 방어 전략에서 탈피해, 위협 근원을 조기에 억제하겠다는 일본 안보 문법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한다. 물론 천문학적인 개발 비용과 실전 배치 일정의 촉박함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하지만, MHI의 기술적 행보는 이미 멈출 수 없는 궤도에 진입했다.

 

 

일본이 영국, 이탈리아와 공동 개발하는 6세대 전투기 GCAP. 출처=일 방위성.jpg
일본이 영국, 이탈리아와 공동 개발하는 6세대 전투기 GCAP. 출처=일 방위성

 

영국이탈리아와 6세대 전투기 GCAP 개발

하늘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MHI의 승부수는 영국, 이탈리아와 공동 개발하는 6세대 전투기 GCAP(Global Combat Air Programme)이다. MHI는 이 거대 프로젝트의 일본 측 주계약자로서, 단순한 기체 제작을 넘어 유·무인기가 통합된 전투 네트워크 체계를 설계하고 있다.


해외 군사 전문지들은 "GCAP은 일본이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항공 기술 자립을 이루려는 가장 담대한 시도"라고 평한다. 이제 조종사는 단순히 비행기를 모는 것이 아니라, 드론과 위성을 지휘하는 '전장의 관리자'가 된다. 이 프로젝트의 성패는 일본 항공산업의 향후 50년을 결정지을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다.

 

 

타이게이급(Taigei-class) 잠수함. 출처=일본 해상자위대.jpg
타이게이급(Taigei-class) 잠수함. 출처=일본 해상자위대

 

침묵의 암살자, '타이게이급' 잠수함의 위협

해상 자위대의 밑바닥을 지키는 타이게이급(Taigei-class) 잠수함은 MHI 공학 기술의 정수다. 2024년 3월 3번함 '진게이(Jingei)'가 취역한 데 이어, 2025년 3월에는 4번함 '라이게이(Raigei)'가 정식으로 깃발을 올렸다.


이들은 리튬이온 배터리 기반의 추진 체계를 도입해 잠항 시간을 혁명적으로 늘렸고, 소음은 심해의 적막 수준으로 줄였다. 비록 원자력 잠수함이라는 체급의 한계는 명확하지만, 좁은 길목을 지키는 '매복자'로서 타이게이급은 주변국 해군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방위와 산업은 한 몸"… 이즈미사 사장 기술 자립 강조

이 거대 제국을 지휘하는 이즈미사와 세이지 사장은 MHI를 '제조사'에서 '안보 체계 설계자'로 재정의한 리더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 "방위와 산업은 불가분의 관계"라며 기술 자립과 글로벌 공급망 확보를 줄기차게 강조해 왔다.


하지만 현장의 공기는 복잡하다. 일본 언론들은 "정부의 정책 변화 속도가 산업의 체질 개선 속도를 앞서고 있다"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MHI가 짊어진 전략적 무게가 실제 제조 현장의 생산성과 맞물릴 수 있을지가 이즈미사와 사장 앞에 놓인 가장 큰 숙제다.

 

 

이즈미사와 세이지 사장. 출처=MHI.jpg
이즈미사와 세이지 사장. 출처=MHI

 

K-방산과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라이벌'

대한민국 방산과 MHI의 충돌은 이제 동남아시아와 호주 등 제3국 시장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특히 2025년 일본이 호주와 약 100억 호주달러 규모의 프리깃함 관련 전략적 논의를 이어가며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K-방산에게도 작지 않은 경고음이다.


한국이 압도적인 '가성비'와 '납기'로 시장을 파고든다면, MHI는 수십 년간 다져온 원천 기술과 미·일 동맹이라는 강력한 외교적 자산을 앞세운다. 양국의 기술 경쟁은 동북아시아 방산 시장의 긴장감을 높이는 동시에, 기술 진화를 가속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잠 깨는 사무라이, 다시 쓰는 안보 지도

평화는 말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압도하는 물리적 힘에 의해 담보된다. 미쓰비시 중공업이 설계하는 전력은 단순한 기계 덩어리가 아니라 일본 안보 전략의 구체적 형상이다.


검은 날카로워졌고, 창의 사거리는 길어졌다.

여전히 높은 단가와 해외 시장에서의 경험 부족이라는 변수가 남아있지만, MHI의 행보는 이미 일본의 안보 지도를 근본적으로 다시 그리고 있다. 잠에서 깨어난 사무라이의 발걸음은 이제 열도를 넘어 태평양의 깊은 파도를 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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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방산기업⑭: 미쓰비시 중공업] 잠 깨는 열도, 일본의 ‘창’이 된 방산 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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