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06 (금)
 
클레망 들랑그(Clement Delangue) 허킹페이스 설립자. 출처=브라이언 맥컬로 유튜브.jpg
클레망 들랑그(Clement Delangue) 허킹페이스 설립자. 출처=브라이언 맥컬로 유튜브

 

[시큐리티팩트=김효진 기자] 2026년 현재, 실리콘밸리의 거대 기업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장소는 구글의 연구실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터 센터도 아니다. 바로 '허깅페이스(Hugging Face)'라는 이름의 디지털 도서관이다.


오픈AI와 구글이 수조 원을 들여 만든 모델의 내부를 철저히 잠그는 동안, 전 세계 수백만 명의 개발자들은 이곳에 모여 지능의 설계도를 직접 열어보고, 수정하고, 다시 공유하며 거대 플랫폼의 독점 구조에 균열을 내고 있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클레망 들랑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한 명의 천재가 만든 닫힌 지능보다, 수만 명의 평범한 개발자가 함께 개선한 열린 지능이 결국 승리할 것이라 믿는다."


이 철학은 2026년 현재, AI가 소수 권력의 통제 수단이 아닌 인류 공공 자산으로 남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다쟁이 챗봇에서 'AI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프랑스 출신의 클레망 들랑그가 2016년 허깅페이스를 처음 세웠을 당시, 이 회사는 10대 이용자를 겨냥한 소셜 챗봇 앱을 만드는 작은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챗봇 그 자체보다, 챗봇을 만들기 위해 공개한 코드와 도구에 개발자들이 더 열광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들랑그는 이때 방향을 틀었다.

 

허깅페이스의 디지털 도서관 개념도. 그림=재미나이.jpg
허깅페이스의 디지털 도서관 개념도. 그림=재미나이

 

누구나 AI 모델을 올리고, 실험하고, 개선하며 다시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 그 선택이 허깅페이스의 현재를 만들었다.


2026년의 허깅페이스는 명실상부한 'AI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다. 자연어 처리 모델부터 이미지 생성, 단백질 구조 예측, 로봇 제어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축적해온 다양한 형태의 지능이 이 플랫폼에 집적돼 있다. 공개된 모델의 수는 수십만 개를 넘어, 이제는 백만 개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곳의 진짜 경쟁력은 양이 아니라 속도다. 특정 기업이 모델 성능을 1% 끌어올리기 위해 수개월을 투자하는 동안, 허깅페이스 커뮤니티에서는 전 세계 개발자들이 동시에 코드를 들여다보며 문제점을 찾아낸다. 빠르면 수일 내에 결함이 공유되고, 개선된 버전이 다시 배포되는 구조다. '집단 지성'이라는 말이 가장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현장이다.

"오픈소스는 민주주의 기술이다"

클레망 들랑그가 오픈AI의 샘 올트먼과 가장 뚜렷하게 대비되는 지점은 '투명성'에 대한 인식이다. 올트먼이 안전을 이유로 모델 내부 구조를 공개하지 않는 '폐쇄적 정원(Walled Garden)' 전략을 택해왔다면, 들랑그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한다.


"알 수 없는 지능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지능이다."


그의 철학을 상징하는 사례가 바로 '빅사이언스(BigScience)' 프로젝트다. 전 세계 60여 개국, 1000명이 넘는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든 대형 언어 모델 '블룸(BLOOM)'은, 특정 기업 자본이나 비공개 연구소 없이도 최고 수준 AI를 공동으로 개발·소유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들랑그는 AI를 기술이 아닌 정치적 구조로 바라본다. "AI는 민주주의와 같아야 한다. 소수가 결정하는 지능은 결국 그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다. 우리는 지능 결정권을 다시 대중의 손으로 돌려놓으려 한다."

 

 

그림=챗GPT.jpg
그림=챗GPT

 

엔비디아와 구글이 '적군이자 아군'에게 투자한 이유

허깅페이스의 주주 명단은 흥미롭다.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 세일즈포스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빅테크 기업들이 2023~2024년 잇따라 수억 달러를 투자했다.


자신들의 '성벽'을 허무는 데 앞장서는 기업에 왜 그들은 돈을 댔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허깅페이스 없이는 오늘날 AI 생태계 자체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 개발자 다수는 허깅페이스의 '트랜스포머(Transformers)' 라이브러리를 기반으로 AI 코드를 작성한다. 이는 곧 허깅페이스가 AI 시대의 사실상 표준 언어를 쥐고 있다는 뜻이다.


비즈니스 모델 역시 영리하다. 모델 자체는 무료로 공개하되, 기업들이 이를 실제 서비스에 안전하게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컴퓨팅 자원, 보안, 관리 인프라는 유료로 제공한다. 이 전략 덕분에 2026년 현재 허깅페이스의 기업용 솔루션은 포춘 500대 기업 상당수가 검토하거나 이미 활용 중인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오픈 LLM 리더보드', 거짓 성능을 가려내는 판사

2026년, 기업들이 새로운 AI 모델을 도입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수치는 기업이 발표한 홍보 자료가 아니다. 허깅페이스가 운영하는 '오픈 LLM 리더보드(Open LLM Leaderboard)'의 순위다.


들랑그는 이 플랫폼을 통해 각국 기업과 연구소가 발표하는 모델 성능을 동일한 기준으로 검증하는 'AI 판사' 역할을 자처했다. 과장된 마케팅 문구 대신, 실제 테스트 결과가 공개된다.


이 리더보드는 한국 기업에도 중요한 등용문이 됐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업스테이지의 솔라(Solar) 등 국내 모델들이 이곳에서 성능을 검증받으며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개발자들이 만든 다양한 AI 애플리케이션(데모) 목록. 출처=허깅페이스.jpg
개발자들이 만든 다양한 AI 애플리케이션(데모) 목록. 출처=허깅페이스

 

한국의 '소버린 AI' 전략과 들랑그의 시선

클레망 들랑그는 한국 시장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그는 한국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오픈소스를 무기로 독자적인 AI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잠재력이 가장 큰 국가" 중 하나로 꼽는다.


실제로 최근 한국의 주요 제조·IT 대기업들은 민감한 데이터를 해외 빅테크에 직접 맡기기보다, 허깅페이스의 오픈소스 모델을 기반으로 자체 AI를 구축하는 방식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들랑그는 "한국의 강력한 개발자 문화와 오픈소스 생태계가 결합될 경우,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는 실질적인 기술 독립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조언한다.

지능의 민주화, 그 머나먼 여정

클레망 들랑그는 스스로를 혁명가가 아닌 '사서(Librarian)'라고 부른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과 지능이 소수에게 독점되지 않도록 정리하고, 보존하고, 개방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뜻이다.


2026년, 인류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소수 엘리트가 설계한 완벽한 지능의 보호 아래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다소 투박하더라도 모두가 함께 만든 투명한 지능 위에서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


클레망 들랑그와 허깅페이스는 후자의 길이 느리고 고통스러울 수는 있어도, 더 지속 가능하다는 사실을 현실로 보여주고 있다. 노란 이모지 로고는 이제 단순한 브랜드를 넘어, 거대 기업 독점에 맞서는 협력과 공유의 상징으로 읽힌다.


 

태그

BEST 뉴스

전체댓글 0

  • 42839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2026 AI를 이끄는 사람들⑨: 클레망 들랑그] 허깅페이스 창시자, '빅테크 AI'에 맞서 열린 지능 설계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