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최석윤 기자] 전쟁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의 영역이다. 수조 원대 스텔스 전투기가 전략적 억제의 상징으로 존재하는 동안, 수십억 원대 군용 드론(무인기) 이 적 기갑 부대를 무력화한다면 군사력의 공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2026년 현재, 이 같은 무인기 중심 전장 변화의 상징이 바로 튀르키예의 바이카르(Baykar)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 기갑 전력에 타격을 입히며 세계적 주목을 받은 바이락타르(Bayraktar) TB2는 이제 단순한 전술 드론을 넘어, 중견·신흥국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공중전력의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성능과 가격의 균형이라는 전략적 선택의 결과에 가깝다.
바이카르는 비상장 기업이어서 구체적 재무제표는 공개되지 않는다. 다만 튀르키예 정부 발표와 현지 산업 통계를 종합하면, 2023~2024년 수출액은 약 18억~20억 달러(약 2조 5900억 원 ~ 2조 8800억 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2025년에도 유사한 규모를 유지한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매출의 9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수출 주도형 방산 기업이다.
TB2를 도입한 국가는 30개국을 넘어섰으며, 중동·아프리카·동유럽을 중심으로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다. 공개 자료 기준 수주 잔고 역시 수십억 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특히 우크라이나 내 생산 시설 설립을 추진하며 전시 상황에서도 현지화 전략을 선택한 점은 상징성이 크다. 완공 시점과 양산 규모는 유동적이지만, '전쟁 한복판에 생산 거점을 구축한다'는 결정 자체가 기업의 위험 감수 성향을 보여준다.
이 기업의 중심에는 셀추크 바이락타르(Selçuk Bayraktar) CTO가 있다. MIT에서 수학한 공학자이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사위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초기부터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기술 자립 노선을 강조해 왔다.
서방의 부품 수출 통제 이후 핵심 장비 국산화를 가속화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바이카르는 항공 플랫폼 자체보다 소프트웨어, 데이터 링크, 임무 체계에 역량을 집중해 왔다. 이 접근법은 개발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운용 데이터 축적을 통해 제품을 빠르게 개량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그는 한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단순한 항공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가진 비행 시스템을 개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은 바이카르가 하드웨어 제조사이면서 동시에 소프트웨어 기업임을 드러낸다.
바이카르는 전술급 무인기에서 멈추지 않고 상위 체계로 확장하고 있다.
△ 바이락타르 아킨치(Bayraktar Akıncı)
고고도 장기체공(HALE)급 무인기로, TB2보다 대형화된 플랫폼이다. 정밀 유도무기와 일부 순항미사일 운용 능력을 갖추며 사실상 '중형 전략 타격 플랫폼'으로 분류된다.
△ 바이락타르(Bayraktar) TB3
접이식 날개를 채택해 함상 운용을 전제로 설계됐다. 튀르키예의 강습상륙함 기반 해상 운용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 바이락타르 키질렐마(Bayraktar Kızılelma)
제트 엔진을 탑재한 무인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다. 스텔스 형상 설계를 적용했으며, 향후 초음속 영역 진입을 목표로 시험 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 완전한 작전배치 단계는 아니지만, 기존 전투기 개념을 보완하거나 일부 임무를 대체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바이카르 전략의 핵심은 가격 대비 효율성이다. 예컨대 'F-35 Lightning II'는 대당 약 8천만~1억 달러(1150억~1440억 원) 수준으로, 단 한 대의 손실도 전략·정치적 부담이 크다. 반면 바이락타르 TB2는 공식 단가가 공개돼 있지는 않지만, 해외 수출 계약을 기반으로 한 시장 추정치에 따르면 기체 1대당 약 500만~1100만달러(약 70억~150억 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이 비용은 통상적인 장비·지상국·훈련 지원 패키지를 포함하기 전 본체 가격을 기준으로 한 수치다. 이에 따라 TB2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에서 운용되며, 일정 수준의 손실을 감수하는 전술 운용이 가능하다.
이는 고가 소수 정예 체계 중심의 공군력과, 다수 운용 기반 무인 체계 간의 새로운 균형 문제를 제기한다. 최근 각국이 '드론 군집(Swarm) 전술'과 유·무인 복합 편대를 동시에 연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이카르는 이 흐름에서 실전 데이터를 가장 많이 축적한 기업 중 하나로 평가된다.
한국 방산업계에도 바이카르는 무시하기 어려운 변수다. 중고도 무인기와 중대형 공격 드론 시장에서 직접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중동과 동남아시아는 한국과 튀르키예가 동시에 공략하는 핵심 시장이다.
동시에 협력 가능성도 존재한다. 한국의 엔진·센서·정밀유도 기술과 튀르키예의 무인기 통합·운용 경험이 결합될 경우 새로운 시장 모델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실제로 국내 방산 기업들은 바이카르의 빠른 제품 개량 주기와 현지화 전략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방위산업은 오랫동안 '최첨단'과 '고가'가 동의어처럼 인식돼 왔다. 그러나 무인 체계의 확산은 그 공식을 재정의하고 있다. 바이카르는 이 변화의 선두에서 비용 대비 효율이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시장에 던졌다.
전장의 판도는 단기간에 결정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고가 유인 전력 중심의 구조에 균열이 생겼고, 무인 체계는 이제 보조 전력이 아니라 핵심 전력으로 이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