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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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뱀파이어 드론에 탄약을 묶고 있다./사진=밀리터리 타임즈

 

[시큐리티팩트=전승혁 기자] 먼지가 자욱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전선, 참호 안에서 적을 기다리는 것은 총을 든 보병이 아니다. 12.7mm 기관총을 장착한 로봇 궤도 차량이 24시간 자리를 지키고, 그 위로는 수 대의 FPV(1인칭 시점) 드론이 벌떼처럼 하늘을 메우고 있다. 실제 군인은 수 킬로미터 뒤 안전한 지하실에서 태블릿 화면을 보며 이 기계들을 조종한다. 한때 수천 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사수했던 전선은 이제 전선(Wire)과 신호(Signal)가 지키는 ‘기계의 땅’으로 변모했다.


인력 부족이 불러온 ‘전쟁의 수학’

최근 블룸버그와 CNN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우크라이나 최전선 부대들은 인가 인원의 30~60%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방 병사의 평균 연령은 45세까지 치솟았으며, 약 200만 명의 동원 회피자와 20만 명의 무단 휴가자가 발생하는 등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해 있다.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데이터 기반 경영으로 해결하겠다는 일명 ‘전쟁의 수학’ 계획을 제시했다. 그는 "추가 진격이 불가능할 정도의 인명 손실을 기계로 대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25년 말 기준, 러시아군 목표물의 80% 이상이 드론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한 해 동안 영상으로 확인된 명중 기록만 82만 건에 달한다.


“보병은 죽었다”... 드론 조종사가 1인 분대 역할

현장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미국의 국방 전문 매체인 밀리터리 타임즈(Military Times)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역의 드론 조종사와 국방 관계자들을 심층 인터뷰하며 무인 군대의 실상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28기계화여단 산하의 외국인 무인 부대 ‘플래시’ 소속 요원 스쿠비(가명)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보병은 죽었다(Infantry is dead)”고 단언했다. 그는 보병의 전투 경험보다 드론 시스템을 이해하고 운용하는 능력이 현재 전장에서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밀리터리 타임즈는 주 방위군 특수부대인 라자르 그룹의 사례를 인용해, 지하실에서 태블릿을 든 조종사 한 명이 세 개의 드론 피드를 전환하며 한 대는 공격에, 두 대는 상공 감시에 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종사 한 명이 과거 한 개 분대가 하던 임무를 수행하는 셈이다. 우크라이나 현지 국방 전문 매체인 NV 역시 12아조프 여단의 ‘킬’ 사령관 멘트를 인용해 “우리 구역에 우크라이나 보병은 아예 없다. 드론이 적을 발견하고 포병이 타격하며 지뢰가 이동을 막을 뿐”이라고 묘사했다.


혹한과 기술적 한계… ‘돼지기름’ 바른 드론까지

하지만 기계 전쟁으로의 전환이 순탄치만은 않다. AFP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역사적인 혹한으로 인해 드론 배터리가 방전되고 카메라가 얼어붙는 등 기술적 한계가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장거리 드론 제작자 데니스 슈틸리에르만은 “기체 단열을 위해 라드(돼지기름)를 발라 비행시킨다. 웃기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며 처절한 현장의 임기응변을 전했다. 로봇이 인간을 완벽히 대체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 출신 제시 누에세는 “무인 시스템은 혼자서는 지구를 지킬 수 없다”며 보병의 근본적 역할을 강조했다.


승리를 위한 유일한 기회, 무인 시스템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의 선택은 단호하다. 무인 시스템 전략을 총괄하는 유리 미로넨코 중령은 밀리터리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며 다른 길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무인 시스템 부대를 독립 군사 부서로 격상하고 공급망을 디지털화했다. 주문 후 단 하루 만에 전선에 드론을 보급하는 속도전은 전 세계 군사 강국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인구 감소와 병력 부족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군에도 우크라이나의 ‘기계 전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병력 위주의 국방에서 AI와 무인 시스템 중심으로의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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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사람 대신 기계가 참호를 지킨다”... 우크라이나, ‘보병 없는 전쟁’으로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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